학술 연구/Review of Books

Charles Murray의 Real Education 비판적 읽기

Natural J 2016. 4. 24. 18:14

미국의 미래는 학업적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데 달려있다.’[1] Charles Murray2008년 야심 차게 출간한 Real Education에서 말하는 진짜 교육은 이미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소위 영재라고 불리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일이다. 그가 볼 때 IQ검사와 각종 검사를 통해 학업 능력이 낮다고 판명(?)난 아이들은 더 이상의 성장 가능성이 없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심어주는 누구나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교육적 낭만이며, 오히려 거짓된 말로 그들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Murray는 줄곧 이 책을 통해 주장한다.


과연 그러할까? 표준화 검사, 혹은 지능 검사에서 학업 능력이 50%이하라는 판정을 받은 학생들은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가능성을 믿으며 격려하는 사상은 헛된 낭만주의이며, 이러한 학생들을 지원하는 정책은 교육 정책으로서 실효성이 없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그의 주장에 처음에는 반감이 갖던 교육 종사자들도 어느 순간 그의 주장에 동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다. 많은 교육자들이 가르쳐도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아이들을 줄곧 만나왔고, 그러한 과정에서 수없이 좌절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어쩌면 많은 학생들이 뒤쳐지더라도,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2]Murray의 주장은 매혹적이며 부인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교사는 학생의 교육 성취도를 근거로 행해지던 많은 불이익과 이익 관계, 그리고 교육적 책임론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Murray가 말하는 타고난 기질 및 지능의 영향의 절대성은 매혹적이다. 그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전통적 학업 코스를 성공적으로 마치기에는 그저 충분히 똑똑하지 못하다고 단언한다. (44) 이를 위해 그는 NAEP[3] 문항들을 가져와 실례를 보여 준다. 제공된 NAEP 문항은 실제로 기초적인 수학 지식에 기반을 둔 문항들로 이러한 문항에 미국 학생의 상당수가 정답을 맞추지 못한다는 현실을 통해 그가 말하는 하위권 학생들의 심각한 지적 능력의 결여는 증명된다. Murray에 따르면 아이들은 단순 암기를 통해 틀린 문항에 대한 정답률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추론을 통해 다른 문제에도 적용하는 능력은 갖지 못했고, 따라서 교육을 통해 그들의 성적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기대는 헛된 희망, 낭만이다. 언어, 수리적 능력뿐만 아니라 가드너의 다른 지능들, 예를 들면 자기 성찰적 지능[4] 또한 교육을 통해 변화 시키기에는 그 기질적 한계가 명확하고, 이를 우리 모두 알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44) 그는 이런 예시들을 통해 단언한다. 우리는 대체로 학교가 아이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의 능력 부족을 인정하는 것은 그들을 방임하자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맞는 과업과 기대를 주는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그러나 그가 지속적으로 근거로 드는 사회적 통념들은 기존의 패배주의적 사고를 강화시킬 뿐 어떠한 건설적 논의도 가능하지 못하게 한다는 면에서 한계를 갖는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그가 학생들의 성취를 높이는 데에 있어 학교 교육의 효과가 미미하다고 주장할 때 일례로 드는 교육 방식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고전적이고 제한적인 학교 교육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성취가 낮은 학생들이 특정 시험 유형을 교사와 수업의 도움을 통해 익힐 수는 있지만, 문항 유형이 바뀌고 내용이 바뀌어 출제되면 또 다시 틀릴 것이며, 이는 교육의 한계가 아닌 학생들의 지적 능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43) 이 때 학생을 시험에 준비시키는 교사의 수업 방식으로 그는 반복적 기계적[5] 교수 방식을 예로 든다. 그의 주장 이면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시험 대비이며 추론적 사고를 포함한 기타 메타 인지적 사고, 전략적 사고에 대한 교수는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내재하고 있다.


이는 그의 수업 모형이 고전적 지시 모형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Rosenshine Stevens(1986)의 지시적 수업 모형에서는 지시적 수업의 절차를 도입새로운 학습과제 제시교사 주도 연습교정과 피드백학습자 주도 연습점검 및 복습의 여섯 단계를 통해 교수 학습이 이루어진다. 학습자는 교사가 알려주는 내용을 연습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나 현대 교육에서는 KEDI의 토의수업 모형, Parnes의 창의적 문제 해결 모형, 협동 학습 모형, 집단 탐구 수업 모형 등의 보다 학습자 중심적이고 확산적 사고를 장려하는 수업 모형을 채택하고 있다. 일례로 창의적 문제해결모형에서 교사는 아동이 그들 자신의 산출을 개발하도록 자극하고, 자신을 표현하도록 하며, 말하기보다는 들어줌을 통해 아동이 스스로 문제를 찾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가 교육을 통해 학생이 성장할 수 없다고 본 가장 큰 이유는 변화하는 교육의 목적과 교수 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주장이 갖는 위험성은 그가 펼치는 독자 포섭 전략에 있다. 본격적인 비판에 앞서 그는 매우 흥미로운 포섭 전략을 사용하는데, 바로 글을 읽는 독자들을 상위 50%에 해당한다고 가정하고 이를 설득하는 일이다. (33) 그는 이런 수준 높은(?) 비문학 도서의 2번 째 장()까지 읽은 독자들은 이미 상당한 지적 능력을 가졌으며, 독자의 출신 학교가 좋거나, 가정 형편이 좋을 것이라는 추측을 제기한다. 이를 통해 독자와 그 주변인물들을 앞으로 Murray가 신랄하게 비판할 대상인 하위 50%에서 제외시키며, 그의 비판 담론에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하위권 학생들을 타자화한다.


이러한 그의 포섭 전략은 글을 읽고 있는 교육에 관련 종사자들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 이유는 실제로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학업 성취가 낮은 학생들의 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교육계 종사자는 학업적 성취가 뛰어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에서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에 진학하려면 고등학교 시절 높은 내신 혹은 수능 점수를 받아야 한다. 많은 교육자들에게 있어, 학업 성취가 낮은 학생들의 상황은 경험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하위 50% 이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타자화는 그들을 도울 대상이 아닌 무시하고 방치할 대상으로 만든다. 실제로 그는 곧바로 하위권 학생들의 발전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주장하며 그들을 지원하는 NCLB와 같은 통합적 교육 정책의 실효성[6]에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 제대로 된 교육적 노력과 자본이 투입될 대상은 어릴 때 높은 언어, 논리-수학적 능력을 통해 학업 성취도를 증명한 영재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엘리트주의적 교육관에 독자들의 사회 경제적 배경과 개인적 경험을 이입시켜 자연스럽게 동화시키려는 그의 전략은 교수자와 낮은 성취를 보이는 학습자의 유대를 저해하며 교육자의 건전한 교육관 형성에 치명적인 해가 될 것이다.


물론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지적인, 그리고 전인적인 성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지금까지 명확히 증명된 바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Murray의 주장, 타고난 기질과 지능의 절대성은 지나치게 경험적, 사회 통념적인 이야기에 기반하고 있으며, 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은 오를 수 없다는 그의 논리는 학교 교육의 역할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에서 기인하고 있다. 교육자들이 이러한 영역에 대한 비판 의식 없이 그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타자화하며 교육 무용론혹은 영재 위주의 교육관으로 교육 사상을 갖고 현장에 서게 되었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낙인을 받고 버려지는 약자 계층의 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Murray와 같은 보수적이고 과격한 주장에 더욱 더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다가서야 할 것이다.

 



[1] 이 책의 4장의 제목으로 ‘America’s Future Depends on How We Educate the Academically Gifted’를 번역한 것이다.

[2] Schools Have No Choice But to Leave Many Children Behind p.43

[3] National Assessment of Education Progress

[4] Murray는 가드너의 7가지의 지능에는 위계관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언어, 논리-수학적, 개인 간, 개인 내 지능의 4가지 지능에 비해 신체-운동적 지능과 음악 지능, 그리고 넓은 의미의 공간 지능에 해당하는 미술적 지각 능력과 손과 눈의 조정 능력에 해당하는 2.5개의 지능은 그 중요도가 더 낮다는 것이다. Intrapersonal skills도 개인 내 지능, 혹은 자기 성찰적 지능으로 학업 능력과 중요한 연관 관계를 가진다고 보았다.

[5] Rote, drill 등의 교수 방식

[6] 2001년 제정된 No Child Left Behind 법안. NCLB 법안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으며, 미국 사회 전역에 걸친 비판론이 존재한다. 그러나 Murray의 주장은 애초에 하위권 학생들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NCLB 정책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비판 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