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의 모임에는 책 읽기가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곳에서 본인이 책을 읽고 쓴 글을 가지고와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세 살짜리 꼬맹이도 밥먹으며 유투브를 보는 시대인데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글을 쓰다니, "대단하다" "나랑은 다르다" "이런 시간을 언제 내지?" "나는 이런것도 못하고 뭐하는 거지" 이런 류의 불안감, 묘한 질시, 거리감과 함께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찾아 온다.
생각해보면 나도 대학 때, 대학원생 때, 그리고 이직 준비를 하면서 글을 참 많이 썼었다. 그러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쓴 긴 호흡의 글을 찾아보자면 2년 정도 전의 일이 되겠다. 2017년 이맘 때는 다른 학교로의 경력직 이직을 한창 준비하고 있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5장짜리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다. 그 때는 많이 절박했고 그래서 나를 포장하는 그 글이 참 잘 쓰여졌다. 그렇게 쓴 글로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합격하고서, 또 그 시기가 꼭 석사 과정을 수료한 때와 딱 맞아 떨어지면서 긴 글을 쓴 일이 전무했다.
2년간 이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교사로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전에는 학부모, 아이들, 동료 교사의 눈치를 보느라하지 못했던 수업과 평가를 여기서는 참 많이 시도해보았다. 나를 믿어주는 우리 학교의 학년부, 영어과 동료교사들, 그리고 서울 거꾸로교실 오프라인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영어 교사로서 스스로를 많이 다듬을 수 있었다. 수업의 변화도 크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청소년을 이해하는 시각을 넓힐 수 있었다. 김현수 박사, 권영애 선생님이 쓰신 책들과 회복적 생활교육 철학을 만나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로서의 철학을 점차 세워가고 있다고 느낀다.
교사로 근무하다 보면 크고 작은 위기에 처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 위기들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혹은, 학교 안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들로 인해 교사가 예상할 수 없는 어떤 순간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이 때, 교사가 아이와 함께 당황하고 우왕자왕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칠 것이냐, 아니면 이 아이를 온전하게 구해낼 것이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아이를 구하지 못해서 생긴 상처는 아이의 앞으로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 예를 들면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 못하게 스스로 벽을 치고 소극적으로 굴거나 폭력적으로 구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 더이상 친구관계로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먼저 자기 선택으로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아이의 앞으로의 학교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에 악순환이 일어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과거의 상처에서 기인하는 방어적인 태도는 아이들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실패하는 경험을 하면 교사는 죄책감 혹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위축되게 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교사로서의 자기 효능감이 낮아 지게 되는데, 결국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문제에 되도록 관심을 갖지 않고 개입하지 않는 부정적인 혹은 방임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기도 한다. 아이의 문제에 개입했던 과거의 경험이 보람있거나 성공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학생이 도움을 청하면 " 왜 또 나에게, 혹은 우리 반에, 이런 일이" 혹은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식의 감정을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교사가 이런 아이들을 위기에서 성공적으로 구해내는 방법, 나아가서는 아이들이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단단한 울타리를 쳐주는 방법이 회복적 생활교육의 패러다임에 있다고 믿는다. 아직은 내공이 많이 부족하지만 연수를 통해서 또 모임을 통해서 배우고 실천하면서 교사로서 나의 존재를 찾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선생님들이 이 패러다임에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랜 기간 쓰지 않았던 긴 글을 쓰고 싶다. 그 일이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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